이정선부터 장범준까지... 시대 따라 변한 기타 스승들
16-09-13 10:20 조회 4,087
지금은 주요 대학마다 실용음악과가 설립된 곳이 수두룩하고 각종 학원부터 유튜브 동영상 강좌에 이르는 등 일반인들이 악기 연주를 배울 수 있는 공간 및 기회가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1980~1990년 초반만 하더라도 요즘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럴 만한 여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탓에 기타를 비롯한 악기를 다루는 이들에겐 각종 음악 교재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혹자는 이런 교본들을 두고 "뮤지션들의 숨은 스승"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특히 독학으로 연주력을 키운 사람들에겐 유명 음악인 이상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통기타(어쿠스틱 기타) 교재를 중심으로 그동안 이들 음악 교본들은 어떻게 발전하고 현업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줬는지 살펴보자.
예제 연습곡 유행따라 달라져... 최근 국내 가요 비중 높아
이들 교재를 살펴보면 대개 유명 히트곡을 따라 연주하면서 실력을 늘리는 방식을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여기에 수록된 곡들을 통해 그 무렵의 인기곡들을 직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주로 록 음악 위주로 채워지는 일렉기타, 드럼 교재의 경우, 예전엔 해외 헤비메탈 명곡들을 중심으로 학습이 이뤄졌다. 간혹 1980년대 송골매 등 '그룹사운드'의 음악도 담기긴 했지만.
그러던 것이 이른바 인디 록밴드들의 붐을 타고 점차 우리 뮤지션들의 곡들도 비중이 높아졌다. 지금은 YB,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다양한 국내 밴드들의 음악으로 연주 실력을 늘릴 수 있도록 많이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가 큰 분야는 아무래도 어쿠스틱 기타 교본들이다. 1980~1990년대 초반엔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앞선 세대 통기타 명곡들과 이문세, 변진섭, 김현식 등의 발라드곡들이 비중이 높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린 연주 지망생들이 늘어나자 이들 예전 연습곡들은 점차 비교적 최신 인기 가요들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버스커 버스커를 비롯해 아이유, 로이킴, 라디, 정엽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젊은 음악인들의 명곡들이 이젠 요즘 취미로 배우는 이들과 연주 지망생들로부터 새로운 학습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1970~1980년대 해외서적 무단 복제 범람
과거엔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각종 영어, 수학 교재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미국-일본의 서적들을 그대로 베껴 출간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대중음악 악기 교본 역시 마찬가지다. 주로 일본 유명 음악출판사에서 나온 각종 서적을 "OO 출판사 편집부"라는 식의 필자 불분명한 책으로 번역 판매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 탓에 잘못된 일본식 연주 용어들이 그대로 실리는 등 지금으로는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곤 했다. 가령 기타를 연주할 때 왼손만으로 밀어 반음 내지 한 음을 올려 내는 벤딩(Bending)주법을 '초킹'으로 표현한다든지 베이스를 연주할 때 오른손 엄지 손가락로 타악기처럼 줄을 튕기는 슬래핑(Slapping, 또는 Slap 주법)을 '쵸핑'으로 적는다든지가 그런 예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저작권 조약에 공식 가입하게 되면서 이런 식의 무단 복제는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그 무렵 통기타 교재 중 획기적인 책이 하나 나오게 되었는데 바로 <이정선 기타교실>이었다.
<이정선 기타교실>, 체계적인 한국형 음악 교재의 첫 걸음
▲<이정선 기타교실> 표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교재이다.ⓒ 이정선음악사
이정선은 4인조 포크그룹 해바라기 출신으로 1970~1980년대 솔로와 록그룹 신촌 블루스 활동을 통해 빼어난 기타 연주를 들려주던 싱어송라이터였다. 1980년대 후반엔 세광음악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1990년대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개정판 및 추가 시리즈를 연이어 발행,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게 된 젊은이들 중 <이정선 기타교실>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당시로선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음악 서적이었다.
그 무렵 이 책이 인기를 얻었던 것은 이전까지 나온 서적들이 흔히 다루던 단순한 리듬 스트로크 또는 아르페지오 연주 위주에서 벗어나서 재즈, 블루스, 보사노바, 뉴에이지 등 당시 새롭게 국내 대중 음악계에 영향을 주던 다양한 장르를 다뤄 더욱 전문적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정선은 그 후 록, 재즈, 블루스, 베이스 관련 서적들을 연이어 출판하면서 1990년대 당시 삼호-세광 출판사 양강 체제의 음악 출판 업계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후일 여러 출판사를 통한 각종 양질의 기타 교재 출간이 봇물 터지듯 이어진 데엔 <이정선 기타교실>의 영향력이 작지 않았다.
해외 유명 서적의 정식 출간 '붐', 그리고 동영상
2000년대 들어 달라진 점은 해외 유명 음악 출판사들이 발행한 책들이 속속 번역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버클리 음대, 일본 'Rittor Music' 출판사 등이 낸 책들도 가까운 서점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모범 예제 연주를 담은 CD, DVD 등을 포함해 더욱 쉽게 배울 수 있게 바뀐 것 역시 예전에 비해 좋아진 사례로 언급할 수 있다. 예전에는 테이프 정도가 고작인 데다 각 트랙 구분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유명무실했지만, 오디오 CD, 또는 MP3 CD 형태의 부록으로 더욱 간편하게 예제를 듣고 따라 할 수 있게끔 변모했다.
여기에 동영상 연주를 담은 DVD를 담아 출간하는 것도 2000년대 이후의 변화 중 하나다. 요즘엔 아예 유튜브와 QR 코드를 활용해 모바일로 영상을 보면서 연습할 수 있는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정성하, 함춘호, 장범준 등 국내 유명 음악인들의 교재 발행
▲최근 음악 서적 분야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한 <장범준 기타교실>의 표지.ⓒ 삼호ETM
토미 임마누엘 등의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 제이슨 므라즈나 존 메이어 등 해외 스타, 슈퍼스타K 등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의 기타 든 싱어송라이터들이 주목받으면서 2010년 이후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다양한 교재들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이 시장은 새롭게 활력을 얻고 있다.
어린 나이에 화려한 연주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 정성하는 아예 자신이 발표한 음반 수록곡들을 채보한 서적들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이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함춘호, 김도균, 샘 리, 이태윤 등 국내 유수의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등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교재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올해 들어선 '벚꽃엔딩'과 '여수밤바다'로 수많은 기타 키즈들의 영웅(?)으로 떠오른 버스커 버스커 장범준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워낙 인지도 높은 인기 뮤지션인 덕분에 그의 주요 곡들을 예제로 담은 <장범준 기타교실>은 단번에 음악 분야 인기도서로 등극했다.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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